2013년 2월 11일 월요일

십자가는 우상이다



우상숭배 왜? 이렇게 많은 십자가가 존재하는 것일까?. 카톨릭 백과사전은 40가지 모양의 십자가를 소개하는 데만 한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만약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유래됐고 이교주의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이토록 다양한 형태의 십자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양한 모양의 십자가들, 이들 가운데 머나먼 고대에 기원을 두고 있지 않은 십자가는 하나도 없다. 신약성경 용어주석사전에 의하면 “십자가는 고대 갈데아에서 기원되었고 그 나라와 이집트를 포함한 인접 국가에서 담무스(Tammuz) 신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의 기념비들과 신전 벽돌에서 타우 십자가(T)를 들고 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저명한 역사가는 수천 년 동안 바꾸지 않는 여기(이집트)에서 우리는 가장 신성한 상형문자들 가운데서 다양한 형태의 십자가를 보게 된다. 그러나 특히 ‘이집트의 십자가’ 혹은 타우(T) 십자가로 알려진 것은 자주 원이나 타원이 위에 그려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 신비적인 상징이 이 나라에서는 유별난 것이 아니었으니 갈대아인, 페니키아인, 멕시코인이나 두 반구(半球)에 살고 있는 모든 고대인들이 경배했다고 밝혔다 (로마카톨릭주의의 정체, 92쪽).


이처럼 십자가는 여러 민족들에게 유포되어 신성시 되었다. 중국인들은 십자가를 가장 오래된 고안 도구 중 하나로 여겨 탑벽에 새기거나 사원의 등에 그렸으며, 북아프리카의 카빌 여인들은 이슬람교도지만 미간에 십자가 문신을 했다. 마야문명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멕시코의 팔렝케에는 ‘십자가 사원’이라 알려진 이교 사원이 있으며, 고대 멕시코인들도 십자가를 토타(tota, 우리 아버지)로 경배하였다. 이 밖에도 수많은 민족들이 다양한 형태의 십자가를 종교적인 상징으로 사용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이전부터 오랫동안 숭배되어 왔던 것이다.



이같이 지극히 비기독교적인 십자가가 기독교 내로 들어오게 되었다. 배도한 교회들이 수많은 이교도들을 받아들였고 이들 이교도의 부호들과 상징들을 계속 보유하는 것을 광범위하게 허락한 것이다. 더 나아가 가장 자주 쓰이는 형태인 타우나 T의 십자가 조각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사용하도록 채택했다. 그리하여 431년 교회와 사무실 안에 십자가가 도입됐으며 AD 586년경 뾰족탑 위에 십자가를 세우게 됐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상징을 견고히 한 사람은 콘스탄티누스 황제다. 콘스탄티누스의 ‘십자가 환상’과 그에 이은 ‘개종’이 그것이다. 콘스탄티누스는 밀비안(Milvian) 다리 전투를 앞두고 꿈을 꾸게 됐다. 십자가가 나타나 ‘정복의 상징’이라고 알려줬고 콘스탄티누스는 그 십자가를 깃발에 그려 진군한 결과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고 한다. 이어 그는 기독교로의 개종을 선언했다.







이러한 일화는 교회 내 십자가 사용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이교도의 상징인 십자가를 하나님과 연관 짓는 확실한 고리(?)를 만든 셈이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기독교의 십자가 숭배 사상을 정당화시켜줄 수 있는, 콘스탄티누스의 십자가 환상과 개종을 순수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역사가 윌 듀런트는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그의 개종은 진실된 것이었는가? 그것은 노숙한 정치적인 지혜의 발로였을 공산이 크다. 그는 그리스도인 예배의 의식적인 요구에 거의 따르지 않았다. 그리스도인 주교들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서 그는 비록 제국의 단합에 관심을 두어 반대자들을 억압하고자 한다 해도 그리스도계를 휘젓는 신학적인 이견들에 관하여는 별 관심이 없었다. 통치 기간 중 그는 주교들을 정치적 조역자들로 취급했다.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교는 수단이 될 뿐이지 목적이 아니었다.”



반면 콘스탄티누스는 태양신교 최고 지도자로서 이교 예배를 돌봐주고 그 권리를 보호해줬다고 한다. 그의 개종은 이교주의와 기독교를 하나로 연합하여 제국의 힘을 모으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물론 십자가 또한 이들을 하나로 묶기 위한 가시적 도구였다. 애초부터 그의 마음속에는 그리스도의 희생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댓글 5개:

  1. 교묘한 속임수에 우리가 다 속고 있었습니다.이제라도 십자가는 우상임을 알았으니 마땅히 배척하는게 맞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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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럴듯한 말로 하나님의 뜻을 가리우고 있는 십자가는 우상입니다. 분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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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천지만물에 충만하신 하나님은 이따위 조각들이 대신할 수 있다는 발생이 너무나 가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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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사람들의 눈은 속일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눈은 속일수가 없습니다..
    우상숭배자들의 결국은 멸망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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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보고 깨달으라...십자가는 십자의 형상일뿐 아무것도 아님을...대신 기억하라 "새언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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